28일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 '첨단과학, 다가올 50년'에 참가한 석학들. 하택집 존스홉킨스대 의공학과 석좌교수,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과 석좌교수,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응용물리학과 교수,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박지웅 시카고대 화학과 교수,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최종현학술원 제공
과학자들은 미래 과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들에 대한 탐구를 꼽는다.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물질들은 의료와 정보통신(IT) 기술에 널리 활용돼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28일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첨단과학, 다가올 50년’ 컨퍼런스에선 초소형화 기술과 관련된 나노와 양자 물질 전문가들이 한 데 모였다. 이들은 최근까지 이뤄진 나노와 양자 기술의 발전 양상을 짚으며 이를 기반으로 가까운 미래에 만나게 될 새로운 기술들을 소개했다.
○광 기술 기반 현미경, 분자 크기 세포도 관찰 할 수 있어…진단과 치료효과 확인에 유용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하택집 존스홉킨스대 의공학과 석좌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하택집 미국 존스홉킨스대 생물물리학 및 의용생체공학과 교수는 이날 ‘생명과학과 의학 분야의 최첨단 광 기반 기술’을 주제로 강연하며 작은 세포를 관찰할 수 있는 연구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의 기술로는 인간 몸 속 장기 안에 있는 다양한 세포를 관찰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세포 안에 있는 수천 개의 분자를 관찰하는 것은 학자들의 도전 과제였다. 세포 안의 분자를 맨눈으로 보는 것을 쉽게 비유하면 인간의 몸을 지구 크기로 확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2014년 노벨화학상의 주인공이기도 한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은 세포 관찰기술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고 하 교수는 설명했다.
형광현미경의 대표적인 사용례는 아주 작은 근육단백질인 ‘미오신’이 체내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형광현미경이 도입된 이후, 과학자들은 미오신에 형광염료 분자를 붙인 다음 영상화해 이 단백질이 몸 속에서 아기가 기어다니는 모양이 아닌 성인이 보폭을 크게 걷는 형태로 이동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최근에는 ‘광시트 현미경’이 개발됐다. 광시트 현미경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표본만을 자극하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부위에는 빛을 비추지 않기 때문에 광손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 교수는 “살아있는 물고기 속에서 기어 다니는 단일 면역세포도 관찰할 수 있다”며 “이 면역세포가 돌아다니며 상처나 병원균을 찾는 것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미래에는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광학기술이 더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며 “인간 환자의 조직에서 단일 분자의 고해상도 자료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료를 활용하면 질병 진단 기술의 개선은 물론, 치료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더 작은 물질에서 더 많은 정보처리를…양자정보학의 화두 ‘큐비트’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과 석좌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이어 박홍근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는 정보처리 장치에 활용할 수 있는 양자정보학의 최근 관심분야를 소개했다. 이날 ‘헬로 퀀텀!’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그는 양자정보학이 미래과학에서 중요한 이유를 진단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양자정보학은 정보처리 기술에 활용되기 위한 양자 물질을 탐구한다. 양자 물질을 한계에 가깝도록 소형화하는 것이 주된 과제 중 하나다. 양자 물질의 사용례는 지금도 널리 사용되는 일반적인 반도체 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도체 칩의 배선은 약 0.5나노미터로 원자 하나의 크기에 가까운데, 이때 최소한의 물리량을 의미하는 양자는 물질의 최소단위체인 분자와 본질적으로 같다. 반도체 칩의 배선을 더 작게 만들기 위해선 곧 양자 물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이어 양자정보학의 뜨거운 감자로 큐비트(양자 비트)를 꼽았다. 큐비트는 양자 정보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최소 정보 단위로 퀀텀 비트의 줄임말이다. 큐비트의 핵심은 ‘정보의 중첩’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고전적인 컴퓨터는 ‘0’과 ‘1’ 두 개의 비트로 연산작업을 하는 반면, 큐비트는 이 0과 1을 겹쳐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한다. 쉽게 비유하면 피아노를 칠 때 하나의 건반만 쳐서 음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트를 사용한 연산과 같다면, 여러 개의 건반을 동시에 쳐서 음을 표현하는 것은 큐비트의 연산과 같다.
박 교수는 “큐비트는 차세대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기술로 구글과 IBM 등 글로벌 기업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며 “앞으로 50년 동안 양자정보학이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이어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 물질을 활용한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현재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큐비트와 같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양자물질플랫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가장 선도적인 플랫폼은 일명 ‘초전도 큐비트’다. 초전도 큐비트를 만드는 원리는 이렇다. 먼저 초전도 고리를 만든 뒤, 에너지 소멸이 없는 전류를 시계와 반시계 방향으로 동시에 흘려보내면 이들 전하는 중첩돼 큐비트가 된다. 에너지 소멸이 없는 전하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 초전도체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 난점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낸 큐비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련해 김 교수는 “현재 연구자들은 완벽한 큐비트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양자 물질로 초전도체를 조합하고 있다”며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는 최근 비틀린 원자층에서 갑자기 초전도성이 나타나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운 미래에는 더 완전하고 강력한 양자 사태를 만드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축성과 전도성 함께 가진 물질, 어디까지 얇아질까…"기술한계 임박"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는 이날 '미래 보건 의료와 QLED 장치를 위한 나노기술’을 주제로 강연했다. 현 교수는 “앞으로의 전자 기기의 주류는 단단한 재료가 아닌 유연하고 접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기기가 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앞서 연구자들은 접을 수 있는 전자 기기를 만들기 위해 신축성이 있는 전극 물질을 찾아나섰다. 신축성을 가진 대표적인 물질에는 고무가 있는데, 문제는 고무가 완전 절연체란 것이다. 때문에 전도성을 가지면서 신축성이 있는 물질을 만드는 것은 연구자들의 숙제였다.
이 지점에서 나노기술이 사용됐다. 전도성을 가진 고무를 합성하기 위해 앞서 연구자들은 은으로 만든 나노와이어와 고무 혼합 용액을 에탄올 내성 혼합물에 넣었다. 이렇게 된 은 나노와이어는 고무에 반쯤 파묻히게 된다. 합성된 물질은 높은 신축성과 전도성을 모두 가지게 됐다. 현 교수는 “지금도 삼성전자가 개발한 접히는 휴대전화가 사용되고 있는데, 미래에는 더 얇으면서도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며 “전자기기로 종이접기를 하는 날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접을 수 있으면서 전도성을 가진 물질은 의료서비스 등을 위한 ‘전자 피부’에도 널리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박지웅 시카고대 화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이날 강연한 박지웅 미국 시카고대 화학과 교수는 현 교수에 이어 ‘물질이 더 얇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주제로 강연했다. 박 교수는 아주 얇은 한 절연체를 예시로 들었다. 고체임에도 공기처럼 가벼운 이 절연체는 고출력 전선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열을 식힐 수 있다. 소형 전자 기기가 발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앞서 현 교수가 언급한 전자 피부와 같은 사람의 몸과 붙여서 사용하는 기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박 교수는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매우 얇은 물질들이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물질들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조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현재 출시된 원자 3개 두께의 반도체는 마치 포스트잇처럼 벗겨낼 수도, 다시 합쳐질 수도 있다”며 “이러한 특성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또한 이같이 박리가 가능한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서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앞으로 반도체 소자가 얼마나 작은 나노단위까지 작아질 수 있는지 전망했다. 그는 “옛날 펜티엄 컴퓨터 안에는 약 500만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었는데 요즘의 컴퓨터에는 약 200개가 들어있다. 즉 모두의 휴대폰 속에 5만 개의 펜티엄 컴퓨터를 넣고 다니는 것”이라며 그동안 반도체 소자 크기를 압축하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반도체 소자 크기를 더 압축하는 기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 교수에 따르면 현재 연필심 크기의 작은 칩에 200억 개의 반도체 소자를 부착하기 위해선 반도체 소자의 크기를 약 3나노미터까지 줄여야 했다. 3나노미터(nm·10억분의 1m)는 원자 10개 크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개발되고 있는 여러 기기들은 반도체 소자를 1nm 크기까지 줄여야 한다. 이는 원자 2~3개 크기다.
작은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는데 난점은 이 장치를 제어하는 전류가 매우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공간에 맞게 전류를 찌그러뜨리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고 열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아주 작은 반도체 소자를 만들어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게 된다.
염 교수는 “미래과학에선 지금 사용되는 것과는 혁명적으로 다른 장치가 요구된다”며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라고 재차 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선 훌륭한 과학자와 공학자의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월 28일 최종현 학술원 '과학혁신 컨퍼런스'에 참가한 발표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원문보기